✔ 줄거리
『기생충』은 서울의 낡은 반지하 주택에 사는 기택(송강호)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버지 기택, 어머니 충숙(장혜진), 아들 기우(최우식), 딸 기정(박소담)은 모두 무직 상태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자 박스를 접는 일이나 공공 와이파이를 훔쳐 쓰는 등 하루하루를 버텨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악하지도 않고, 무능하다기보다는 그저 운이 따르지 않는 평범한 하층민 가정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우는 대학에 재학 중인 친구 민혁의 소개로 박 사장(이선균)이라는 IT 기업 대표의 딸 다혜의 영어 과외를 맡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학력을 속이기 위해 여동생 기정에게 부탁해 재학증명서를 위조하고, 고급 주택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죠. 박 사장의 가족은 상류층답게 여유롭고 세련되지만, 동시에 순진하고 외부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면모를 보입니다.
기우는 과외를 시작하자마자 박 사장 가족에게 빠르게 신뢰를 얻습니다. 이후 기정은 다혜의 남동생 다송의 미술 치료사로 위장해 집에 들어가고, 이어 아버지 기택은 운전기사로, 어머니 충숙은 가정부로 들어가게 되며, 온 가족이 점점 박 사장 집에 "기생"하게 됩니다. 이들은 마치 계획된 팀처럼 하나둘 박 사장 가족의 신임을 얻으며 새로운 삶을 차지해 나갑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밤, 박 사장 부부가 여행을 떠난 사이 기택 가족은 저택을 자신들의 공간처럼 즐깁니다.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던 그들 앞에, 해고된 이전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그녀는 집 안에 놓고 간 물건이 있다며 들어오고, 결국 박 사장 저택의 지하에 숨어 살던 남편(박명훈)을 기택 가족 앞에 드러냅니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급격히 분위기를 전환합니다. 가벼운 블랙 코미디 같던 이야기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변모하고, 웃음을 머금고 보던 관객은 점점 무거운 숨을 쉬게 됩니다. 지하실의 존재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상류층이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현실이자, 보이지 않는 사회의 그림자를 상징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박 사장 가족의 귀환, 문광 부부와의 대립, 폭우로 인한 반지하 침수 등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며 파국으로 향합니다. 그 속에서 기택 가족은 점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예기치 못한 비극으로 영화는 종착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 리뷰
『기생충』은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코미디 같다가도, 어느 순간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고, 그러다가도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르의 혼재는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이란 본래 그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공간’입니다. 반지하와 고지대 저택, 그리고 계단과 지하실. 인물들은 그 공간을 오르내리며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들고, 관객은 그 동선을 따라가며 계급 간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됩니다. 특히 비가 쏟아지던 날, 박 사장의 가족은 정원에서 파티를 즐기고, 기택의 가족은 하수구가 역류하는 반지하로 돌아가는 장면은 대비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송강호는 복잡한 내면의 감정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조여정은 무지하지만 악의 없는 상류층 인물을 연기하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박소담의 짧지만 강한 존재감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확실히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기생충』이 놀라운 건,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세계 어디에서든 통하는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계층 간의 격차, 보이지 않는 선, 절대 교차할 수 없는 삶의 무게. 이런 테마는 국경을 초월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졌기에,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마무리하며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던 날,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웃었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도 그 끝에 남는 씁쓸함은 쉽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기생충’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가장 영리하고 날카롭게 비춘 거울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내려가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어느 위치에 서 있을까요. 그리고 계단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 영화는 그런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남깁니다.
그 132분의 시간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체험이자,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강렬한 여운이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조용한 밤에 한 번쯤 꼭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